[HISTORY #03] 포르쉐는 어떻게 레이스를 지배했을까?
포르쉐는 어떻게 레이스를 지배했을까?
레이스로 완성된 이름
오늘날 포르쉐와 모터스포츠는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911 GT3, GT3 RS, Cayman GT4 RS.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포르쉐의 고성능 모델들 역시 그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레이스 트랙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포르쉐가 처음부터 거대한 레이싱 제국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작은 정반대였습니다.
작고 가벼운 차로, 훨씬 크고 강력한 자동차들을 상대하는 브랜드였습니다.

작지만 거대한 차들을 잡았다
1953년 등장한 Porsche 550 Spyder.
이 차는 포르쉐가 처음부터 레이스를 염두에 두고 개발한 대표적인 초기 경주차였습니다. 포르쉐 공식 자료에 따르면 550은 미드십 구조와 매우 가벼운 차체를 바탕으로, 자신보다 훨씬 큰 배기량의 경쟁차들을 상대했습니다.

약 1.5리터의 공랭식 4기통 박서 엔진.
출력은 약 110마력.
숫자만 보면 지금 기준으로는 전혀 대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차체가 매우 가벼웠습니다.
포르쉐는 단순히 더 큰 엔진을 넣는 대신, 가벼운 차체와 효율적인 설계로 더 빠르게 달리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이 철학은 실제 레이스에서 통했습니다.
550 Spyder는 카레라 파나메리카나와 타르가 플로리오를 비롯한 여러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고, 르망에서도 클래스 우승을 쌓아갔습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 Giant Killer
550 Spyder에는 유명한 별명이 하나 있습니다.
Giant Killer.
말 그대로 ‘거인을 잡는 차’라는 뜻입니다.
작은 배기량의 포르쉐가 훨씬 강력한 경쟁차들과 싸워 이기는 장면이 반복되면서 이런 이미지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때부터 포르쉐는 중요한 공식을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큰 엔진이 전부가 아니다.
가볍고, 효율적이며, 정확하면 이길 수 있다.
이 철학은 이후 포르쉐의 레이싱카와 양산 스포츠카 모두에 깊게 남게 됩니다.
904 Carrera GTS, 포르쉐 레이스카의 형태를 바꾸다
1963년, 포르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자동차를 내놓습니다.
Porsche 904 Carrera GTS.

904는 이전 포르쉐들과 비교해 훨씬 낮고 날렵했습니다.
그리고 포르쉐 역사상 처음으로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 차체가 적용된 모델이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가벼운 것뿐 아니라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한 디자인도 적극적으로 적용됐습니다.
포르쉐는 이제 엔진 출력뿐 아니라
무게, 차체 구조, 공기역학을 하나의 패키지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904는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과를 보여줍니다.
1964년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강력한 성적을 거두며 포르쉐의 레이싱 기술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포르쉐가 원하는 것은 클래스 우승이 아니었다
포르쉐는 이미 작은 배기량 클래스에서 수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르망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51년 처음 참가한 르망 24시에서 356 SL로 클래스 우승을 기록한 이후, 포르쉐는 꾸준히 존재감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종합우승.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 자동차는 여전히 다른 브랜드였습니다.

작은 차로 큰 차를 잡는 것도 멋졌지만,
포르쉐는 이제 더 이상 클래스 우승만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1960년대 후반, 전략을 바꿉니다.
목표는 하나.
르망 24시 종합우승.
그리고 등장한 괴물, Porsche 917
1969년.
포르쉐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레이스카를 공개합니다.
Porsche 917.

917은 기존의 작은 경량 레이스카들과는 방향이 달랐습니다.
거대한 12기통 엔진을 탑재했고, 엄청난 속도를 내도록 설계됐습니다.
이제 포르쉐가 직접 최고 클래스의 경쟁자들과 맞붙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초기 917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빨랐고,
그만큼 다루기도 어려웠습니다.
특히 고속에서의 안정성이 문제였습니다. 포르쉐는 이후 공기역학을 집중적으로 개선했고, 그 과정에서 안정성이 크게 향상된 917 K, Kurzheck(숏테일)가 등장합니다.

1969년, 단 75미터가 부족했다
포르쉐는 1969년 르망에서 거의 목표를 이룰 뻔했습니다.
하지만 우승까지는 불과 75미터 정도가 부족했습니다.
포르쉐 공식 기록은 이를 당시 르망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결승 중 하나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포르쉐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전까지 쌓아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917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결과가 나옵니다.
1970년 6월 14일
마침내 르망 정상에 서다
1970년 르망 24시.
Porsche Salzburg 소속의 917 KH #23.
드라이버는 Hans Herrmann과 Richard Attwood.

경기는 악천후 속에서 진행됐고 많은 차량들이 탈락했습니다.
하지만 917은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343랩.
약 4,607km.
그리고 24시간의 레이스가 끝난 뒤,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것은 포르쉐였습니다.
포르쉐 역사상 최초의 르망 24시 종합우승.
그리고 포디움 전체에 포르쉐가 올라섰다
그날 포르쉐는 단순히 1등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위는 Porsche 917 KH.
2위 역시 Porsche 917.
3위는 Porsche 908/02.
포르쉐는 르망 포디움을 휩쓸었습니다.

수년 동안 작은 배기량 클래스에서 싸우던 브랜드가,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내구 레이스의 정상에 오른 순간이었습니다.
포르쉐에게 레이스는 광고가 아니었다
포르쉐가 모터스포츠에 집착한 이유는 단순히 트로피를 모으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레이스는 가장 가혹한 개발 환경이었습니다.
24시간 동안 엔진을 돌리고,
고속에서 브레이크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서스펜션과 차체를 한계까지 몰아붙입니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기술은 다시 양산차로 돌아왔습니다.
엔진.
브레이크.
공기역학.
경량화.
섀시.
포르쉐가 오늘날까지도 “레이싱카와 양산차의 거리가 가까운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된 배경에는 이런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술은 911에도 들어가기 시작했다
포르쉐의 레이스 기술은 어느 순간부터 911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70년대,
911의 뒤에는 거대한 윙이 달리고,
훨씬 넓은 차체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모터스포츠에서 축적된 기술 중 하나가 911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게 됩니다.
터보차저.
그리고 1975년,
포르쉐는 당시 도로 위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괴물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Porsche 911 Turbo.
코드명 930.
NEXT HISTORY
다음 이야기에서는
911 뒤에 거대한 터보차저가 들어가면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왜 초기 911 Turbo가 훗날 ‘Widowmaker’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AEMAZON HISTORY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