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MAZON HISTORY
930이 만든 터보의 전설, 그리고 그 힘을 다루는 기술
지난 이야기에서 포르쉐는 917로 1970년 르망 24시 종합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트랙에서 얻은 기술이 도로로 나오자,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레이싱 드라이버가 다루던 힘을 평범한 고객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 도전의 한가운데에 911 Turbo, 코드명 930이 있었습니다. 넓어진 뒷모습과 커다란 스포일러만큼이나, 가속할 때의 성격도 강렬했던 자동차입니다.

1975년형 포르쉐 911 터보(930). 초기 터보의 넓어진 차체를 보여 줍니다. 2018년 촬영.
사진: Sicnag / 1975 Porsche Homologation 930 Coupe (45687449482).jpg (Wikimedia Commons) / CC BY 2.0 / 변경 없음
터보의 출발점은 레이스였다
1970년 르망을 제패한 917과, 이후 북미에서 활약한 터보 경주차는 구분해야 합니다.
포르쉐의 터보 기술을 크게 발전시킨 무대는 미국과 캐나다의 Can-Am 시리즈였습니다. 1972년에는 917/10, 1973년에는 917/30이 펜스케 팀과 함께 챔피언십을 차지했습니다.
터보차저는 배기가스로 터빈을 돌리고, 연결된 압축기로 엔진에 더 많은 공기를 밀어 넣는 장치입니다. 배기량을 무작정 키우지 않고도 큰 출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힘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압력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제어하고, 운전자가 요구할 때 예측 가능한 반응을 내야 했습니다. 레이스에서 쌓인 이 경험이 911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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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굿우드에서 촬영한 포르쉐 917/30. 1970년대 터보 레이싱 기술을 보여 주는 차량입니다.
사진: ian mcwilliams / Porsche 917-30 Goodwood 2011.jpg (Wikimedia Commons) / CC BY 2.0 / 위키미디어 제공 축소본, 추가 변경 없음
1974년 공개, 1975년 도로 위로
197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터보 911의 시제품이 등장합니다. 이어 1974년 파리 모터쇼에서 양산형 911 Turbo가 공개됐고, 1975년 봄 고객을 위한 도로용 모델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초기 유럽 사양의 엔진은 3.0리터 공랭식 수평대향 6기통. 최고출력은 260 PS였습니다. 오늘날의 수치와 단순 비교하기보다, 1970년대 중반의 자동차였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 911보다 넓어진 차체와 커다란 뒤 스포일러도 눈에 띄었습니다. 차축 설계와 부품까지 레이스에서 발전한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성능 향상을 차 전체에서 준비한 셈입니다.
오일 쇼크의 여파 속에서 이런 고성능 모델을 내놓는 일에는 회사 안에서도 의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초기 3.0리터 Turbo는 첫 3년 동안 2,850대가 생산되며 기대를 넘어섰습니다.
페달과 가속 사이에 있던 시간
초기 Turbo를 이해하는 핵심은 최고출력보다 힘이 나오는 방식입니다.
터보차저가 충분한 압력을 만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속 페달을 밟은 뒤 기대한 힘이 곧바로 나오지 않다가, 압력이 올라가면서 가속이 강해지는 현상. 흔히 말하는 터보 래그입니다.
운전자의 발과 엔진의 반응 사이에 간격이 생기면, 같은 페달 움직임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회전수와 부하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는 만큼 차의 반응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포르쉐의 회고에서도 초기 Turbo는 일부 운전자에게 다루기 어려운 차였다고 설명합니다. 스포츠 드라이빙 스쿨의 초기 역사와 연결해 언급할 정도였습니다. 빠른 차를 판매하는 일에는 그 성능을 이해하도록 돕는 과제도 따라왔습니다.
자료: 4

포르쉐 박물관의 930/60 터보 엔진 절개 전시물.
사진: Morio / Porsche 930-60 engine rear-left Porsche Museum.jpg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변경 없음
CC BY-SA 사진을 변경·가공해 재배포할 때는 변경 사실을 표시하고, 해당 라이선스의 동일조건변경허락 조건을 따라야 합니다.
‘Widowmaker’라는 별명은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지난 편에서는 ‘가장 위험한 911?’이라는 질문을 남겼습니다. 자극적인 별명만으로 답하기 전에, 차의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930은 엔진을 차체 뒤에 둔 911의 구성을 이어갔습니다. 여기에 강한 터보 출력을 뒷바퀴로 전달했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상황에서 가속과 감속이 바뀌면 타이어에 걸리는 하중도 달라집니다. 코너에서 급격히 감속하면 뒤 타이어의 하중이 줄어들어 자세가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터보의 반응을 예상하는 일과 차체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일이 동시에 요구됐던 셈입니다. 그렇다고 특정 조작을 하면 언제나 사고가 난다는 식으로 단순화할 수는 없습니다. 노면, 타이어, 속도와 차량 상태도 함께 작용합니다.
‘Widowmaker’라는 말의 정확한 기원을 포르쉐 공식 자료에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연재에서도 공식 모델명이나 사고 통계에 따른 위험도 순위처럼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확인되는 사실은 초기 930이 운전자에게 높은 집중과 이해를 요구했다는 점입니다.

1976년형 911 터보의 뒤쪽. 넓은 펜더와 초기형 리어 스포일러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진: Mr.choppers / 1976 Porsche 930 Turbo, Emerald Green met, rear left.jpg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변경 없음
CC BY-SA 사진을 변경·가공해 재배포할 때는 변경 사실을 표시하고, 해당 라이선스의 동일조건변경허락 조건을 따라야 합니다.
포르쉐는 강해진 만큼 더 다듬었다
1978년형에서는 배기량이 3.3리터로 커지고, 뒤 스포일러 아래에 인터쿨러가 들어갔습니다. 최고출력은 300 PS로 높아졌습니다.
인터쿨러는 터보차저가 압축하면서 뜨거워진 공기를 식히는 장치입니다. 엔진으로 들어가는 공기의 온도를 낮추는 일은 더 높은 성능을 안정적으로 얻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브레이크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917에서 이어진 기술을 활용한 제동 시스템이 높아진 성능을 뒷받침했습니다.
930은 1989년까지 꾸준히 개선됐습니다. 더 빠르게 가속하는 능력과 함께, 멈추고 조작하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능력을 다듬는 과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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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bo가 남긴 질문
930은 포르쉐가 레이스의 기술을 도로용 고성능 모델로 발전시킨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따라가면, 출력이 커질수록 차 전체의 완성도가 중요해진다는 사실도 보입니다. 냉각, 브레이크, 차체의 균형과 운전자에게 전달되는 반응까지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기 포르쉐 내부에서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엔진의 위치부터 바꾸면 어떨까?
다음 이야기에서는 924·928·944가 펼친 프런트 엔진의 시대, 그리고 전자제어와 사륜구동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959를 만나겠습니다.
이전 이야기: [HISTORY #03] 포르쉐는 어떻게 레이스를 지배했을까?
다음 이야기: [HISTORY #05] 포르쉐는 왜 엔진을 앞으로 옮겼을까?
자료 및 참고
포르쉐 공식 역사·기술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했습니다. 본문 출력 수치는 해당 사양의 PS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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